프로그램 소개

아시아 발전모델 프로그램은 아시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이론적,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아시아 발전모델을 유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아시아 자본주의의 공통적 제도 및 문화를 논의하며, 비교제도주의 시각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기업 간 관계, 노동, 금융, 복지, 글로벌 가치사슬의 다양한 영역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아시아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유형화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 자본주의의 지역적 공통성과 동시에 지역내 국가별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총합적인 체계(synthesized framework)를 설정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아시아 발전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개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는 21세기 아시아 부상을 배경으로, 아시아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주제와 지역의 결합을 통해 혁신적 연구방법론을 기반으로 하여 2009년 2월 3일 설립되었다. 2019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아시아연구소는 지역과 주제를 결합한 아시아연구의 세계허브라는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아시아를 위한 역할 제고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해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제시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아시아 발전모델 프로그램을 신설하였다. 그 동안 아시아 발전모델 및 아시아 자본주의 연구는 5년 전부터 아시아연구소의 대표적인 연구주제로 기획하여 국내외 유수 연구자 및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기존 서구 중심의 지식 생산과 확산의 흐름을 극복하고, 아시아 연구의 자립화, 토착화, 세계화를 선도할 수 있는 연구기반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는 제조업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지역으로 1960년대 이후 역내에서 일본이 경제발전을 주도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네 마리의 용’을 선두로 하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다섯 마리의 타이거’와 거대경제인 중국과 인도의 CHINDIA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세계경제의 중요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제 지역과 국가 간 차이는 있지만 세계생산기지로서 제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아시아 자본주의는 유럽이나 미국 자본주의와의 차별성을 갖는 동시에 내적으로도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대만, 한국 등 발전국가 방식,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혼합경제 방식, 싱가포르, 홍콩 등 자유경제방식, 그리고 중국, 베트남, 미얀마 등 일당독재아래의 국가주도 방식과 같이 서로 편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도 경제활동에 강하게 개입하는 경우도 있고 홍콩처럼 정부 개입이 약한 경우도 있어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종교적으로도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은 불교와 유교의 영향이 강하다. 반면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의 영향이, 필리핀은 가톨릭의 영향이, 그리고 한국은 불교, 유교, 개신교, 가톨릭 등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위기로 확산되면서 영미식 자본주의는 더 이상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님이 증명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중국식 자본주의 등 아시아 자본주의 및 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대하였다. 아시아 발전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발전국가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시아 자본주의는 앞서 지적한 특수성과 다양성을 공유하면서 역동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을 위해 국가-사회관계, 자본축적 방식, 시장체제, 노동참여, 산업구조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미분과 적분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본 연구는 서울대 연구소가 아시아 연구의 세계허브로서 아시아자본주의 연구를 통해 아시아적 발전모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연구 배경 및 목적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제기된 이슈 중 하나는 영미식 자본주의가 더 이상 세계가 지향해야 할 또는 수렴해 가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폐해인 ‘과도한 국가의 시장개입‘ 때문이었다고 인식되었다. 위기 이후 개혁과정은 IMF의 요구에 따라 워싱턴 컨센서스에 수렴해 가는 것이었다. 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시장은 팽창하고 국가는 쇠퇴할 것으로 예견되었다. 세계화 시기 다국적 기업의 국적(nationality)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다양한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영미식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달리 특정 국가의 제도, 역사, 이념적 유산은 기업전략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다국적기업의 국적은 여전히 중요하며 다양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공존하고 있다.

Hall과 Soskice(2001)는 제도적 비교분석에 기반하여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를 제시하였다. Hall과 Soskice의 연구는 기업(firm)이라는 ‘제도’와 ‘조정’에 초점을 두면서 영미식 자유시장경제(LMEs)와 독일식 조정시장경제(CMEs)의 제도적 다양성과 지속성에 대해 이분법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들의 논의는 영국과 미국 그리고 독일 등 서구유럽 자본주의에 초점을 두었지만, 정작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간과한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서구권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모델에 대한 연구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견인차이자 혁신의 중심인 아시아 발전모델을 구축하기 위하여 아시아 발전국가를 비교제도적 연구방법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발전모델 프로그램의 주요 목표는 아시아 자본주의 시스템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이론적,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속가능한 아시아 발전모델을 유형화하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동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아시아 자본주의의 국가간 이질성은 아시아 발전모델이라는 공통적 특성의 유형화 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다양성은 세계적 현상이며 이 자체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학문적 유형화 작업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기존 연구는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 발전패턴에 주목한다. 우선 “아시아 발전모델이란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 시장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제도적인 여건을 개선해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모델로 정의내릴 수 있다. 많은 연구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가 발전을 지향하기 위한 능력과 변혁적 이념을 갖고 있는지 여부이다. 둘째, 국가가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율적 제도를 발전시켰는지의 여부이다. 셋째, 국가와 정치, 관료, 재계와의 협력적 연계가 이루어져 있는지 여부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발전모델의 핵심 요인은 발전정향의 이념을 제시하는 국가, 상대적 자율성을 반영하는 효율적인 관료제도의 존재, 그리고 국가와 경제 및 사회집단과의 협력을 반영하는 ‘연계된 자율성(embedded autonomy)’의 제도적 배열로 압축할 수 있다.

아시아 발전모델을 남미와 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와 비교해 볼 때 차별화되는 요인으로는 ‘국가-주도’ 발전일 것이다.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대만이 그 뒤를 따라갔으며, 이후 동남아와 중국이 그 뒤를 이어 추적해 가는 안행형 발전궤적 역시 공통적 발전요인에 들어간다. 또한 후발개도국의 빠른 성장의 기반은 추격역량에 (catch up capacity) 있으며, 추격역량의 기본적 요인은 관료적 자율성과 민관협력의 병행, ‘배태된 자율성’으로 요약된다. 빠른 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정부가 기업과의 관계에 있어 ‘보조금’과 ‘성과기준’을 동시에 적용함으로써 남미와 같은 지대추구국가로 전락하지 않았다. 물론 아시아 발전국가 역시 부패의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배태된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행위자와 제도적 환경간의 상호작용이 지속되었다. 사실 동북아와 동남아는 발전시기, 성장동인, 발전패턴, 주도세력, 제도적 환경의 관점에서 볼 때 상이한 점이 많다. 동남아 국가는 동북아에 비해 낮은 수준의 관료적 자율성이 존재했으며 발전패턴도 해외직접투자에 보다 비중을 두는 등 동북아 국가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학자들은 그런 점에서 아시아 발전모델에 동남아 또는 중국을 포함할 수는 없다며 논쟁을 지속한 바 있다. 그러나 아시아 발전모델은 사회과학의 일반화와 이론적 축적을 위해 정의(definition) 및 적용범위에 있어 그 외연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서구권 자본주의 발전모델과의 차별성을 이끌어내 볼 수 있다.

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연구는 아시아 자본주의의 공통점뿐만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연구도 포함해야 한다. 개별국가의 제도적 환경은 행위자에게 각기 다른 유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제도와 행위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개별국가들의 서로 상이한 경로의존적 (path-dependency) 궤적이 어떻게 유지 및 변화하고 있는지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다양성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 대표적 사례로 펨펠은 아시아 발전모델을 ‘레짐(regi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레짐의 구성요소로 국가기구, 사회경제 세력, 외부적 힘을 제시하며 이들이 경제적 패러다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한다. 발전국가는 응집적이며 유능한 기술관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성장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선도기구의 관료시스템 특징을 보인다. 발전국가의 또 다른 중요한 구성요소는 사회경제 세력이다. 국가와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선 국가기구와 사회경제 세력의 상호협력적 관계는 경제성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 번째 요소는 외부적 힘, 비국내적 영향력이다. 외부적 힘은 국내적 레짐에 광범위한 제약과 기회를 제공한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을 이해하는데 외부적 힘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펨펠에 의하면 레짐은 경제적 패러다임인 광범위한 경제정책을 창출하고 변형시키며, 다시 정책들은 레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펨펠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세 가지 레짐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발전적(developmental)’, ‘유사발전적(ersatz developmental)’, ‘약탈적(predatory)’ 레짐으로 명명한다. 발전적 유형에는 일본, 한국, 대만을, 유사발전적 레짐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을 포함할 수 있으며, 약탈적 유형에는 미얀마 북한 필리핀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아시아 연구소에서는 이미 아시아 자본주의와 관련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기초 연구로서 아시아 자본주의의 기원, 공통점, 이질성을 추적하기 위해 세계화의 영향과 그 대응과정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중심으로 비교분석해 보았다. 금융세계화의 영향과 금융개혁과정, 생산세계화와 모바일 폰의 글로벌가치사슬 연구를 진행하였다. 또한 아시아 자본주의 연구를 문화적 관점에서 진행하여 기업문화 연구,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와 문화적 모순, 발전국가의 제도혁신과 문화적 배태성, 중국 대만 홍콩과 동남아 자본주의 문화 비교 등을 분석하였으며, 이들 연구결과는 영문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시아 자본주의의 지역적 공통성과 동시에 지역내 국가별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총합적인 체계(synthesized framework)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계가 뒷받침되어야만 지속가능한 아시아 발전모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결과를 근간으로 하여 추후 연구는 보다 통합적 차원의 이론적, 경험적 기반하에 진행될 것이며, 특히 기존연구에서 빠진 부분들도 보완하며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의 연구과제는 우선 아시아 발전모델 구축을 위한 총합 이론적 차원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다양한 시각을 포괄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시할 것이다. 이후 비교제도적 시각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기업간 관계, 금융시스템, 노동관계, 복지, 교육 및 직업훈련, 기술혁신, 글로벌 밸류체인의 국가간 비교분석 등 보다 세부적인 이슈들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주요 사업 및 연구 주제
  • Covid-19 and Governance: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 대한 세계 지역별국가들의 대응 과정을 제도적 관점에서 비교분석하였다. 높은 1인당 GDP는 더 나은 수준의 공중보건과 낮은 Covid-19 사망률을 가져오는가? 선진 사회는 양질의 공중보건과 낮은 Covid-19 사망률을 보이는가? 민주주의는 양질의 공중보건을 제공하고 낮은 Covid-19 사망률을 가져왔는가? 본 연구결과는 이들의 연관관계를 지지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성과는 고르지 않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체코가 휘청거리는 동안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위기의 충격을 줄이고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조정시장경제와 발전형 국가주도 시장경제가 다른 시장경제보다 Covid-19 대유행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가? 이 연구는 이것이 중국, 싱가포르, 쿠바, 르완다와 같은 발전형 국가주도 시장경제에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질의 공중보건과 낮은 Covid-19 사망률은 동북아(대만, 한국, 일본)와 북유럽(독일, 스칸디나비아, 단 스웨덴의 경우 사망률이 더 높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Covid-19는 거버넌스 및 사회적 복원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위기는 큰 국가의 역량을 필요로 했으며, 포스트 코로나 시기의 정치경제 질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변화와 지속: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과 대응을 중심으로 한국, 대만, 일본, 중국, 베트남의 발전경로를 비교분석하였다. 한국은 기존의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가 유지되었으나 발전주의적 속성이 다소 강화되었다. 대만은 발전모델의 핵심속성이 약화되는 등 변화를 경험했으나, 발전정향과 금융안정성은 유지되어왔다. 일본은 발전모델의 속성이 약화되었으며, 베트남은 혼종적 발전모델의 특징을 반영하며,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에 부합하는 특성을 보이는 등,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 이후에도 발전적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모델의 제도가 유지 및 변화하는 역동성을 보이고 있다.
  • 코로나 팬데믹 위기 이후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변화와 지속: 동아시아 각국은 각각의 특유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코로나 19 위기에 대응했고 서로 유사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위기 대응에 성공하고 실패했다.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주의와 자유주의, 복지주의와 시장주의, 국경개방과 국경폐쇄의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특정한 선택을 내리고 그에 따른 성과와 한계를 보여주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이한 위기관리 경험과 교훈이 국가의 역할, 국가-사회관계에도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위기대응 결과 동아시아 발전모델에서 어떠한 것이 강화되었고, 약화되었는지 비교 평가가능하다.
  • 아시아 자본주의의 다양성 연구: 국가-사회관계, 정부의 역할, 산업구조, 글로벌 가치사슬 연계 등, 아시아 국가별 비교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서유럽 중심으로 연구되어 온 비교정치경제학의 지평을 아시아 자본주의 국가들로 확대하고자 한다.
  • 아시아 자본주의 발전모델 유형화: 발전적 레짐(한국, 대만, 일본), 유사 발전적 레짐(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약탈적 레짐(필리핀, 미얀마, 북한), 재구성된 발전적 레짐(한국, 대만, 일본), 중국(베트남) 등으로 유형화해 본 후 인도와 같은 국가로 확대해 볼 계획이다.